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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사유와 중세 사유가 혼합된 역사서
‘삼국사기’는 보편주의 사상을 가진 김부식과 8명의 참고직이 쓴 역사서 이다. 고대문헌을 기초로 하긴 했지만, 중세 보편주의적 사유 형태가 상당 부분 가미 되어있다.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렇지 앟으??‘삼국사기’의 기록을 모두 고대인의 사유 형태로 착각할 소지가 많다.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면
(1) 신라의 경우 초기부터 성씨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을 들 수 있다.
6부에 사성을 했다는 기록이 신라의 3대 왕 유리왕대로 되어 있는 것은 분명 ‘삼국사기’의 잘못이다. 그리고 열전에서 그의 족씨나 씨성을 알 수 없다고 기록한 경우를 발견할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2) ‘삼국사기’는 연호를 사용한 예로 신라의 경우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연호는 고구려와 백제에서도 사용했다고 본다. 그러나 본기에서 연호에 따른 연대 표기를 찾을 수 없다. 물론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전체적인 체제를 잡기 위해서 한 때 사용된 연호로는 연대를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연표에 의해 연호의 사용 기간을 확인할 수 있고, 또 김유신의 열전에서는 실제로 연호로 연대를 기록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3) ‘삼국사기’의 상고사 기록의 불신론 내지 날조설이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후 아직까지도 일부 학자들은 추종하고 있다.
하지만 고고학의 발굴 결과가 ‘삼국사기’의 신빙성을 확증하고 있다. 그것은 ‘삼국사기’의 기록을 그대로 믿어도 좋다는 게 아니라 기록을 해석할 때 사료적 검토가 필요한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당시의 금석문 ‘삼국사기’의 관련 내용이 비교, 검토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