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또 국제적으로 1877년부터 중국의 무역역조 때문이기도 하였다. 특히 상해의 금융시장의 투기현상이 경쟁을 유발하였고, 그들이 실패하여 1883년에 주가가 폭락하게 되면서 금융위기가 시작되었다. 청불전쟁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전장은 문을 닫고, 자금은 두절되었으며, 주식시장은 폭락하였다. 상품가격도 30-50%정도 폭락하였고, 부동산 거래는 중지되었으며 많은 회사들이 파산하였다. 이같은 상해의 금융위기는 광동과 강소성으로 확산되어 갔다. 그에 따라 내륙의 상업과 농업발전에까지 악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1883년 경제 위기가 중국과 서양 상업 자본주의의 역량과 약점을 동시에 노출시킨 것이었다고 결론지었다. 1860년 이후 20년 동안 중국 연해의 상업은 자유무역과 화폐를 통한 대출 확장으로 유례없는 발전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지나친 확장과 이어진 침체는 연해 금융제도의 최약성과 신용대출의 한계, 주식 시장의 동요를 불러 왔다. 투기와 가격파동, 전쟁에 따른 공황, 경영 손실과 파산 등의 요인 때문이었다. 1883년 경제 위기는 관료 자본주의에도 전환점이 되었다. 성선회가 주도하는 ‘관독상판’의 형식으로 윤선초상국을 경영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관독상판’ 기업들은 산업 발전에서 관료주의가 기업 정신보다 우선하는 과오를 저지르게 되었다. 더욱이 1883년 금융 위기로 이후로는 산업체의 자본 모집이 더욱 어렵게 되었고, 회사를 설립하는 일은 점점 어렵게 되어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