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공납제는 전국 각지의 토산·물산을 왕실 정부재정으로서 주로 중앙에 납입하는 것이므로, 중앙으로의 수송이나 납입과정에 있어서 상납의 청부 즉 대납의 문제가 일어났다. 대납은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되어 그 하나는 납입물품에 대신하여 다른 물품을 납입하는 경우와, 다른 하나는 상납해야 할 당사자 대신 납부하는 경우가 있었다.
공물의 종류와 수량은 국가에서 소요되는 것을 기준으로 책정하기 때문에 천재(天災)를 입었다 하더라도 감면되기 어려웠다. 더욱이 그 지방에서 생산되지 않는 토산물까지 부과하여 백성은 현물을 외지(外地)에 가서 사와서 납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 상인·관원이 끼어들어 백성 대신 공물을 대납해주고 그 대가로 막대한 이를 붙여 착취하였다. 또, 직접 공납하려 하여도 방납자와 악덕 관원이 결탁하여 관청에서 물품을 수납할 때 그 규격을 검사하면서 불합격품은 이를 되돌려 다시 바치게 하는 점퇴(點退)가 행하여져, 백성은 이 점퇴의 위협 때문에 이후의 막대한 손실을 무릅쓰고 공물을 방납자들이 대납하도록 맡겼다. 따라서 방납은 백성이 직접 납공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하여 생긴 말이다. 또한 지방에서 직접 공납이 가능한 물품이라도 국가의 수요(需要)와 공납 시기가 맞지 않을 때가 많고, 거리가 먼 지방에서는 수송에도 어려움이 많아 방납이 성행하였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
1. 김윤수 지음, 탐구한국사, 형설출판사, 2002.
2. 변태섭 지음, 한국사통론, 삼영사, 2003.
3. 이영철 지음, 한국사총론, 고시연구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