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5. 결혼 풍습
· 결혼의 언약은 맺었지만 그 혼약이 거짓이거나 속임수라면 당사자의 허락이 없더라도 그 결혼을 무효화할 수 있었고, 설혹 그 혼약이 정당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당사자들이 합의를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 혼약을 파기하고 수정을 지킬 수 있었다.
·이이(離弛) : 원래 조선시대에는 이혼이 없었다. 부부는 천생배필이어서 천합이 같아 하늘이 맺어준 것을 사람이 함부로 풀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일부다처제가 보편화되어 있었고 축첩이 공인되어 있었으므로 아내를 버리거나 내보내거나 내쫓거나 나가게 하는 일은 있어도 법률적으로 이혼하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간혹 사대부층에서 가족중 가장이 큰 죄를 범하여 처벌될 시, 그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헤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이이라고 불렀다.
·파의(罷議) : 파의는 이혼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은 법률적인 구속력을 갖지 않는 일종의 관행이었다. 이를 다른 말로 사정파의(事情罷議)라 하였는데 이는 부부간에 서로 협의하여 헤어지는 행위로 이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의절(義絶)인 것이다.
·휴서(休書) : 의절의 징표로 내려주는 상징적인 물건, 이를 다른 말로는 할급휴서(割給休書)라고 부른다. 부부간에 헤어질 때 이혼의 징표로 흔히 아내가 입던 저고리의 깃을 잘라 상대방에게 주곤 하였다. 남편이 아내가 입던 저고리의 깃을 자르는 것은 아내의 육체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는 의식이었다. 즉 천합을 끊어버리는 징표였다.
-책 내용을 바탕으로 찾아본 결혼 풍습: 그 당시 의주 지방에서는 조혼하는 것이 상례였는데 때문에 열 살이면 장가를 가서 살림을 차리는 경우가 보통 이었다. 특히 의주에서는 다른 지방보다 훨씬 일찍 조혼하는 풍습을 가진 것으로 보여 지며 의주 지방의 조혼 풍습을 나타내는 민요로 ‘신랑요’라는 노래까지 있을 정도이다. 신랑요의 내용은 나이어린 신랑이 자기 아내에게 밥을 풀 때 밥을 달라며 보채는 모습을 놀리는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