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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여러 시민운동단체들은 구체적 목표 및 활동방식은 달랐으나 한국사회의 민주화라는 큰 목표에서는 동일한 활동을 해 왔다. 우선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 활동이다. 이지문 중위의 양심선언을 통해 군부대내의 투표제도가 바뀌는 성과를 얻어냈다. 이로서 시민단체가 선거과정에 개입해 들어갈 수 있는 성과를 얻었다. 또 국외적으로 92년 브라질 리우환경회의가 국내에 환경운동이라는 영역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리우환경회의 이후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의 활동 강화, 경실련 환경개발센터의 창립 등은 시민운동의 영역을 넓혀 놓았다. 물론 국제연대의 중요성까지 함께 부각시켰다. 이어 한국시민단체협의회(시민협) 등 연대기구의 활동은 몇몇 큰 단체만의 활동이 아니라 다양한 시민운동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이 영향력을 갖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의 금융실명제 실시와 지방자치제의 실시부터 일 것이다. 금융실명제는 경실련이 창립 초부터 그 필요성을 강조해 온 것이어서 정부가 금융실명제를 실시한다고 했을 때 자연스레 경실련이 주목받았다. 이로 인해 경실련은 사회가 시민운동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이후 각종 현안에서 시민단체의 발언은 중요한 참고사항이 되기 시작했다. 지방자치의 실시는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시민들의 참여의식을 높이는 계기이기도 했다. 당시 도시마다 시민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방자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교통단체들도 주목받았다. 녹색교통운동, 도시연대 등이 모두 90년대 중반부터 활발한 활동을 하기 시작한 단체들이다.
90년대 초반 이후 한편으로는 온건한 시민운동체 내부에서 진보적 경향이 강화되고 다른 한편에서 새로운 진보적인 시민운동조직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녹색교통운동, 참여연대, 열린사회시민연합, 걷고싶은 …
90년대 초반 이후 한편으로는 온건한 시민운동체 내부에서 진보적 경향이 강화되고 다른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