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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르주아의 등장 이전
재기 넘치는 평론가 김동석은 <<부르주아의 인간상>>에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 상인>>을 재해석하면서 통념으로 여기는 샤일럭은 패소자라는 판단을 뒤집는다.
나는 샤일럭의 증서를 유효하다고 인정해야 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일단 그것을 유효하다고 인정한 이상 그 증서를 나중에 선고를 내릴 때에 이르러 비열한 속임수로 제쳐 무효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 대체 피 없는 살이 있는가? 안토니오의 몸에서 한 파운드의 살을 베는 권리를 샤일럭에게 시인한 재판관은 그와 동시에 그것 없이는 살일 수가 없는 피도 또한 베일 것을 그에게 시인한 것이다.
루돌프 폰 예링 <<권리를 위한 투쟁>>, 김동석 <부르주아의 인간상>에서 재인용.
이 글에서 예링은 계속 주장한다. `비열한 기지로 말미암아 그의 권리를 수포로 돌아가게 한 판결`은 `베니스의 법률이 왜곡된 것`을 입증해 주는 동시에 `중세기에 있어서의 유태인의 전형적인 자태 즉 권리를 찾아 헛되이 소리를 지르던 저 사회의 천민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썼다. 이렇게 예링을 인용한 김동석은 `셰익스피어가 의식했건 안 했건 <<베니스의 상인>> 속에는 귀족계급과 신흥계급인 부르주아와의 대립이 역연히 나타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샤일럭이 이 새로운 계급을 대표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근대에 와서 그를 옹호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고 지적하면서 김동석은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지적하기를 샤일럭이 `살과 피`를 요구한 것은 자본가로서는 당연한 것이며 자본가의 돈이란 결국 `살과 피`를 착취한 것이라 했다`고 못박는다. 문제의 초점은 윤리의식이 아니라 이자를 받는 게 정당하냐 아니냐에 있다면서, 안토니오가 샤일럭의 `수염에다 침을 뱉고``개새끼를 문밖으로 차 내쫓듯이 나(샤일럭)에게 발길질`을 한 것은 오류임을 이렇게 밝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