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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신분인 제1신분과 제2신분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의 대다수는 제3신분에 속하였다. 그 수는 전 인구의 96%에 달하였으며, 거기에는 가장 부유한 부르주아지로부터 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계층이 포함되었다. 이 중에서 대다수는 농민으로서 총인구의 3/4을 차지하고 있었다. 18세기 프랑스 농민은 동유럽의 농민들과는 달리 농노 신분에서 해방되어 있었다. 영국의 농민들이 인클로저 운동으로 농업노동자로 전락했지만 프랑스의 많은 농민들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소유한 토지 규모는 살아가는 데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지주에게 소작을 얻는 등의 방법으로 생계를 이어가야만 했다. 또한 농민들은 과중한 세금(지세인 타이유, 교회에 내는 1/10세, 인두세, 소득세 같은 직접세와 혁명 전 가장 증오의 대상이 된 염세 같은 간접세)으로 그 수입의 절반은 빼앗겼으며, 이들에게 도로부역 같은 노동력 징발도 큰 고통이었다. 정부는 7세 이상은 1년에 일정량 이상의 소금을 사도록 강요하였는데, 정부에서 파는 소금은 실제 시세의 10배였다. 염세 때문에 매년 30,000명 이상이 투옥되고 500명 이상이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참고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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