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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론을 입증할 실재적인 근거가 또 있다. 15세기까지 마르코 폴로의 자취를 따라 교역하던 베니스의 상인들에 의해 활발해진 극동과의 교역은 유럽에서 매우 번성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폴로의 대륙횡단 교역로는 아주 멀고 어려운 여행이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믿는, 콜롬부스 같은 항해사들은 서쪽으로 항해하는 방법에 의해 극동에 도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콜롬부스는 그의 모험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정부를 찾아다녔다. 그는 제노아와 베니스 그리고 포르투갈에서 그의 제의를 거절당했다. 그는 다시 페르디난드 5 세와 스페인 까스틸랴의 여왕 이사벨라에게 갔으며, 이들은 세척의 배 -니나, 핀타, 산타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세 척의 배-와 항해를 위한 선원들을 제공했다. 콜롬부스는 1492년 8월 6일 항해를 시작했으며, 그의 선원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던 5주간의 시간을 보낸후에 10월 12일 서인도제도의 산살바도르에 원정대를 상륙시켰다.
그는 1493년 3월 15일 스페인으로 귀환했고, 1493년과 1500년 그리고 1502년 식민지 건설을 위한 일련의 항해들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는 1506년 가난과 천시속에서, 그가 여전히 아시아를 발견했다고 죽는 순간까지 믿고 있었다. 스페인인들은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그들은 정력적으로 탐험과 식민화에 노력을 기울여, 한세대안에 서반구 동쪽 해안의 대부분을 탐사하게 되고, 콜롬부스가 실제로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