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명령에 의해 총을 쏜 이들은 평생 감옥 안에서나 밖에서나 죄인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총을 쏘라고 명령한 자들은 버젓이 활개치며 행세하는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서 희생된 개인들이다. 결국 이들의 처절한 외침은 그들의 가슴 속 깊이 응어리져 있는 원통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응어리진 원통함은 안두희 가조의 삶을 통해서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그들은 가해자의 가족으로서 안두희와 똑같이 죄인처럼 살 수 밖에 없었다. 평생을 쫓겨다녔고 아들 국보는 어떤 정상적인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이들의 마지막 선택은 이민의 길이었다. 이 나라에서는 결코 평범한 삶을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가해자들의 해원은 역사 속의 갈등들의 해소, 즉 화해와 조화의 회복으로 나아가게 된다.
<천년의 수인>에서 보여지는 ‘해원(解寃)’의 방식
<천년의 수인>에서는 연극이라는 놀이속에서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수인으로 갇혀 있었던 이들의 긴 시간 동안의 고통스러운 죄의식을 풀어주고 용서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일부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계엄군 병사 장용구는 발작적으로 그때의 상황을 재현하곤 한다. 처음에 이러한 장요구를 찾아온 유족들은 “상부의 명령에 의한 살상이라고 해서 가해자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양형에서 참작될 뿐이다”라고 말하며 그의 죄를 묻는다. 하지만 나중에 꽃과 과일 바구니를 들고 다시 찾아온 유족들은 용기를 가지고 어떤 압력과 조작극에도 마주설 수 있는 꿋꿋한 기상을 잃지 말라며 오히려 병사를 위로한다. 이 장면을 계기로 한 명의 수인으로서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던 계엄군 병사 장용구는 용서되고 사회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