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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상의 최초의 기록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조선전(朝鮮傳)에 고조선의 도성인 왕검성(王儉城)(평양성)에 대한 이름이 나오는데 이때가 기원전 2세기경에 해당되며 이 당시에 이미 성곽을 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후 고구려, 백제, 신라는 삼국시대(三國時代)로 정립되는 과정에서 많은 성곽을 축조하였는데 이미 삼국시대에 우리 나라 성곽의 우수한 구조 형식을 꽃피웠던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시가 들어서면 성곽을 축조하여 난공불락의 요새를 형성하여 안전을 도모하는 것은 성곽축조의 공통적인 목적이었다. 한국은 역사상 수많은 성곽 축조의 역사를 보이고 있는데, 외적에 대한 방어라는 가장 큰 목적은 물론 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2. 성곽의 형식
성곽의 형식은 축성의 재료에 따라 목책성(木柵城), 토성(土城), 석성(石城)으로 분류된다.
1) 목책성(木柵城)
삼국의 성곽 시설로는 초기에는 대부분 간단한 목책(木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본격적인 석축(石築)에 의한 성곽은 삼국이 고대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한 서기 3세기 이후에 가능하였다. 『삼국지(三國志)』「위지」동이전(東夷傳)에 의하면 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