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설명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교회에서는 1903년의 원산부흥운동, 1907년의 평양 대부흥운동, 그리고 1909년의 백만인 구령운동 등 세 차례의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이중 원사부흥운동과 평양 대부흥운동에 대해서 살펴보고, 한국교회 부흥운동과 교회성장의 특징에 대해서 정리했습니다.
본문/내용
개신교 선교가 시작된 후의 첫 10년간에는 신자의 증가율이 극히 미미하였다. 이 시기는 말하자면 선교를 위하여 지리적인 답사를 하고 씨를 뿌리는 시기였다. 선교를 시작한 지 5년째인 1890년에는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회에서 각각 11명의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해에 세례 교인 수는 장로교에 119명, 감리교에 36명, 모두 합하여 155명이었다. 그러다가 한 5년이 지나면서부터 교인 수가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1895년에 개신교의 세례 교인은 582명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런데 그 중의 3분의 2가 남자였다. 학습 교인, 즉 세례 지원자는 567명인데, 그 중에서 여자는 5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초기에 남자의 수가 많은 것은 여자들이 아직 바깥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시대적인 상황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아 세례를 받은 자의 수가 50명이었고 55세대의 가정이 교회로 들어왔다. 42개의 교회와 전도소 중 선교회의 관할 아래 한국인 전도사가 목회를 하는 곳이 6개 처였다.
그러던 것이 1900년에 들어서면서 교회는 급속히 성장한다. 1907년 장로교의 독노회가 조직이 되어 자립하게 되었을 당시의 장로교의 교세는 목사 7명, 장로 53명…
참고문헌
1) 김영재, 『한국교회사』, 개혁주의 신행협회, 1992
2) 김영재, 『한국교회 성장의 역사와 전망』, 신학지평 제7집, 1988봄
3) 김해연, 『한국교회사』, 성광문화사, 1993
3)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백년사』 보진재
4)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5)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 총신대학교 출판부
6) 백낙준, 『한국개신교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7) 안병동, 『1907년 대부흥운동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연구』,
8) 오흥철, 『1907년 기독교 대부흥운동의 역사적 고찰』, 경희대학교사학과
9) 이덕주, 『초기 개신교사에 있어서 한, 중 기독교교류』, 한국기독교사 연구
10) 이상규, 『교회부흥의 역사와 교훈』
11) 이영헌, 『한국기독교사』, 컨콜디아사, 1978
12) 홍석훈, 『1907년 대부흥운동의 배경과 그 영향에 관한 연구』, 서울신학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