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달동네는 식민지 시대 토막에서부터 이어져 왔다고 생각하여 볼 수 있다. 달동네의 형성을 보면 서울시는 도심부의 불량주택지대를 도심재개발계획이라 하여 무허가 건물을 철거 및 이전을 하였는데 철거된 무허가건물 입주자에게는 정착지라는 것이 제공되었다. 시 외곽 변두리 대규모 국 · 공유지에 각각 8평의 땅을 나누어 주어서 새로운 무허가건물을 지어 살도록 한 정책이었다. 즉 전혀 개발이 안 되는 땅에 대체적인 도로의 선만 긋고 가구별 점유 토지의 위치를 지정해주면 그곳에 가마니나 판자집, 움막집을 짓고 거주하되 도로 · 하수도 등의 기반시설은 입주민 자치에 의해 해결하라는 것이었다.이와 같은 정책은 1959년부터 1971년까지 시행 되었다. http://seoul600.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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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촌과 판자촌으로부터 강제로 쫓겨난 그들은 또 다시 더 먼 도시의 주변부에 정착하여 빈민촌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1980년에 들어서자 건설업의 주 시장인 중동지방의 건설경기가 원유가의 하락으로 퇴락하여 이들 건설회사의 활로가 막히자 도시미화라는 미병하에 재개발 즉, 불량주택 개선사업을 통한 무자비하고 …
참고문헌
<참고문헌>
도서
김정동, 『김정동교수의 근대 건축 기행』, 푸른역사, 1999
논문
이선민,「1930년대 都市 勞動者의 住居難과 住居樣態의 變化」, 2001
이신철,「월남인 마을 ‘해방촌’(용산2가동) 연구」,『서울학연구』, 2000
김종화,「都市貧民에 관한 硏究」,『法政論叢』,1988
<참고 사이트>
서울600년사 : http://seoul600.visitseoul.net
한국건축가협회 : http://www.aric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