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오늘날 우리나라의 영화나 소설에는 `강간`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필수 장치처럼 쓰이고 있다. 작품의 완성도? 즉 그럴싸한 이야기, 또는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라는 뜻이다. 영화나 소설은 인물간의 `갈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어떻게 해소되는가를 따라가며 적는 서사 갈래이다. 이러한 서사 갈래의 틀 안에서 `복수`와 `증오`는 `갈등`이 폭발하게끔 하는 화약과 도화선 같은 것이며, 강간은 이러한 장치들에 불을 당기는 뇌관처럼 작용한다. 그러나 그 폭발은 항상 비극적 장면으로만 치닫진 않는다. 어떤 폭발물은 사람들을 상하게 하는 살상용으로 쓰이지만, 어떤 폭발물은 사람들을 아름다운 꿈속으로 잠시 빠뜨린다. 축제 때 터뜨리는 축포나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 등이 그러하다.
영화 <오아시스>에도 그런 폭발이 있다. 갈등과 증오가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켜 낱낱이 폭발하는 이야기. 이 영화에서 `강간`은 바로 그러한 갈등과 증오를 터뜨리는 뇌관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렇게 터진 불꽃은 아주 잠깐 우리들을 환상의 세계로 데려가 준다. 어떤 환상? 휠체어를 타고 있던 여주인공이 벌떡 일어나,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이라고 노래하던 환한 지하 공간. 또는 뒤틀린 몸을 쭈욱~ 펴고는 금세 남자 친구의 머리를 물병으로 통통 치던 강 위의 지하철 안. 우리의 일상이 3, 4분 간격으로 옮겨 다니는 지하 공간에서 우리는 환한 빛을 보았고, 또 아주 잠깐 일상을 벗어나는 살 만한 세상의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꿈이었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은 어떠한가?
오직 `강간`과 `강간미수`의 법적 잣대만이 파르르 떨며 우리를 쫓아다닌다. `자신을 겁탈하려고 했던 사람을 동정하고, 그것이 다시 사랑에까지 이르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뒤틀린 신체는 남에게 혐오감을 주며, 그 뒤틀린 신체를 사랑하는 것은 조금 모자라야만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