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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는 그림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채전이라는 것을 두었다. 후대에 화원이니 도화서 등으로 부르던 관청이다. 여기에는 다수의 화공이 소속되어 국가적인 공사에 참여했을 것이다. 화승들도 이 관청과 아마도 밀접한 관련을 맺었던게 아닌가 싶다. 당시의 사찰은 주로 국가적인 사업으로 경영된 것이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에 화승들이 반드시 참가했을 것인데, 그렇다면 그는 적어도 채전의 통제를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솔거 또한 이 채전에 소속된 화승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역사상 화가로서 정사의 열전(삼국사기 열전)에 실린 사람은 유일하게도 솔거 밖에 없다. 그만큼 솔거의 명성이 대단했던 게 사실일 것이다. 그는 경주의 황룡사에는 노송을, 분황사에는 관음보살상을, 그리고 진주의 단속사에는 유마상을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분황사의 관음보살상은 분황사의 좌전 북쪽 벽에 그려졌던 천수관음으로 생각되는데 (삼국유사 권3),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눈 먼 아이의 눈을 뜨게 한 기적을 이룬 그림의 작가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기록들로 미루어 보면 그는 일반 회화뿐만 아니라 불교 회화에도 뛰어난 인물로 생각된다. 그런데 황룡사에 그린 노송은 너무나 훌륭해 까마귀, 제비, 참새등의 새들이 종종 날아들다 떨어지곤 하였으나, 세월이 오래되어 중이 단청으로 보충했더니 새들이 다시 오지 않았다고 한다.
※솔거의 생활과 관련된 상상을 바탕으로 한 문학작품이 있는데 그것이 김동인의 동화사이다. 동화사는 솔거라는 (물론 역사적 인물이 아닌 상상 속의 인물이지만...)인물을 중심으로 만든 이야기인데 위에서 나온 〈노송도〉의 전설과 같은 비슷한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를 이룬다. 이 광화사의 줄거리는 인왕산에 산보를 나온 `여(余)`가 공상에 잠겨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