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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부터 1844년까지 계속된 기근으로 일본의 중부와 남부 지방에서 많은 사망자가 속출하자 구체제 내부에서 어려운 문제들이 일시에 터졌다. 그런데다 행정의 비능률과 둔한 대응으로 대중의 저항만 첨예화시켰다.
이 시기의 반란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오사카의 오시오 헤이하치로가 일으킨 난이다. 그는 유학에 조예가 깊은 관리였다. 반란을 일으키게 했던 그의 격문을 보고 감명을 받은 후세의 역사가들은 그를 영웅시하고 있다. 개중에는 임금을 위해 나라 일에 힘쓴 지사들이 갈망했던 반란의 사상적 근본을 여기서 구한 사람도 있었다.
일본의 경제기구가 정교화됨에 따라 백성들이 지향하는 목표와 마을 사람들의 반란은 길거리를 따라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 시대의 한 특징적 현상은 이상사회에 대한 소망이 세상을 바로 잡는다라는 데 있다 보니 이의 지도자는 순교자가 사후에 받고 있는 것과 같은 숭상을 받고 있는데 오시오는 대표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반란은 잘못된 사회, 경제제도에 대해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격문이나 직소장을 받아들인 것은 큰 부담이었으나 이를 수용한 당국의 생각은 달랐다. 길거리를 따라 줄지어 서 있는 촌락은 가마와 말을 이용하여 운반하는 여행자나 화물의 중계소 역할을 했다. 물자수송 관련기관에 대한 수요의 폭발로 바쿠후 말기가 되면 백성의 불만은 걷잡을 수 없이 급증하는 추세였다.
참고문헌
이찌이 사부로오 저, 김흥식 역, 명치유신의 철학, 태학사, 서울, 1992. 11.
하가 토우루, 손숙옥 역, 명치유신과 일본인, 예하, 서울, 198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