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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사 장기려
그는 장인 김하식(金夏植)의 권유로 1932년 4월 경성의전 부속병원 외과학교실 백인제 선생 문하에서 조수로 봉사하며 외과를 전공하였다. 22살 때 의사가 된 그는 29세때 나고야 대학에서 충수염 및 충수염성 복막염과 폐혈증에 관한 연구로 의학박사 학위를 얻었다. 그동안 경성의전에서 봉사했던 그는 1940년 3월 평양의 연합기독병원 외과과장으로 갔다. 이 병원은 감리교 의료선교사 윌리엄 홀(Dr William Hall, 1860-1895)의 미망인에 의해 1897년 설립된 기홀병원으로 시작되었다. 병원으로 옮겨간지 두달 후 그해 11월에는 병원장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인사에 불만을 가진 자들의 질시와 텃세로 불과 두 달만에 원장직에서 물러나 외과과장으로 강등되었지만 변함없이 성실히 봉사한 일은 아름다운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1943년 그의 나이 32세때에 간암의 설상절제수술(楔狀切際手術)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조선의학회에서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신경쇄약으로 휴양중에 해방을 맞은 장기려 선생은 그해 11월에는 평양도립병원장 겸 외과과장으로 약 일년간 일했다. 1947년 1월부터는 김일성 대학의 의과대학 외과학 교수겸 부속병원 외과과장으로 일했다. 그의 성실함과 검소함 때문에 이곳에서도 인정을 받았고, 1948년에는 북한 과학원으로부터 최초로 의학박사 학위를 얻기도 했다. 또 1961년에는 간암에 대한 연구로 대한 의학회 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그 외에도 그의 의학적 공헌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