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4)백제군 사령부설
과거 일본의 출선 기관설에 대한 북한학계의 비판이 분국설이라면 한국학계의 본격적인 비판 및 대안의 제시가 천관우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천관우는 『일본서기』에 보이는 임나관련 사료중에 일본이 주체로 표시되어 있는 기사 가운데서 백제를 주체로 바꾸어 보면 사리에 맞는 것이 적지 않다고 전제하였다. 예를 들어 4세기 말경 왜가 가라칠국을 점령하였다는 기술은 백제의 가야정복이라고 해석하였다. 또 6세기 중반에 보이는 임나일본부도 ‘임나백제부’로 보고 이것은 백제가 군사적 목적으로 가야지역에 설치하였던 군사령부와 같은 성격을 띄고 있다고 본 것이다.
(5)외교 사절설
『일본서기』임나일본부 관련 사료에 통치나 군사적 역할을 찾아볼 만한 기술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일본서기』 임나일본부 관련사료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보다 객관적으로 보는 견해이다. 즉 부라고 하는 표기는 『일본서기』역사관의 산물로서 그 원형이 미코토모치 임을 확인하고 미코토모치의 실체가 기관이나 관청이 아닌 사신으로 해석하여 임나일본부를 임나에 파견된 왜의 사신들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1970년대부터 스즈키 야스타이, 우케다 마시위키 등에 의해 확립되어 한일 고대사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학설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3. 사료를 통한 임나일본부에 대한 반론
(1)『일본서기(日本書紀)』
임나의 연구에『일본서기』가 주목을 끄는 이유는 그 어느 사서보다도 임나라는 단어가 200회 이상이 나올 정도로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신공황후가 보낸 왜군이 369년에 한반도에 건너와 7국과 4읍을 점령하였고, 그 후 임나에 일본부가 설치되었으며, 562년에 임나가 신라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