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근거
일본서기 신공황후 49년 조를 보면 「신공 황후가 보낸 왜군이 한반도에 건너가 7국과 4읍을 점령하고 임나에 일본부를 설치하였는데 562년에 임나는 신라에 의해 멸망되었다.」는 기사가 있음. 7국과 4읍의 위치를 고증한 결과, 지금의 경남 경북의 대부분을 평정하고 전남 전북과 충남의 일부를 정복하였으면, 백제왕의 조공을 받으면서 임나를 중심으로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였는데 그 중심 기관이 일본부이다.
2. 비판
1) 일본서기는 8세기 초 일본의 왕가(천황가)를 미화하기 위해 저술된 것이다.
2) 5세기 이전의 것은 신화적 전설로 간주하는 등 신빙성이 결여된다.
3) 일본 고대사 연구가 혼미상태인 것도 기록의 신빙성 때문인데 유독 임나 관계 기록만은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고 있는 것이 우선 문제이다.
4) 일본서기보다 먼저 저술된 『고사기』 에는 임나일본부에 대해서 전혀 언급이 없다.
5) 4세기의 일본은 열도조차 통합시키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해외 침략의 여력이 없었다.
6)‘일본’이라는 국호도 7세기에 들어와서야 사용되는데 그 이전에 일본부라는 용어가 있었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
7) 기년(紀年)에도 상당한 조작이 가해져 있다. 예컨대 신공황후가 임나를 정벌했다는 369년은 일본서기에는 249년으로 기록되어 있어 120년의 오차가 있는데 이와 같은 오차는 시기가 올라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Ⅲ. 광개토대왕비
1. 광개토대왕비문
광개토대왕비는 414년 장수왕이 자신의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3층 아파트 높이에 달하는 이 거대한 비에는 1800여자가 쓰여져 있는데 현전하는 우리역사기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삼국사기 보다 700여년이 앞서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역사학자들은 이것이 고대일본이 고대한국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증거라고 주장해왔다.
1) 비의 발견 및 조사
능비는 고구려 멸망과 더불어 잊혀졌다가 19세기말에 재발견되었다. 능비의 존재가 처음으로 기록된
것…
…
참고문헌
이기백, 『한국사시민강좌』제3집, 일조각, 1988.
이기백, 『한국사시민강좌』제11집, 일조각, 1992.
한국고대사회연구소편, 『한국고대금석문』, 1992.
박천욱, 『교과서보다 쉬운 독학 국사』1권, 2001.
두산동아 백과사전
인터넷- 역사스페셜“ 추적! 임나일본부의 정체”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