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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외세침략의 위기상황에서 이항로는 이 같은 자국가·자민족·자문화 중심주의의 자주·자존의식으로 현실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으며, 또한 문제의식과 시대인식에 따른 민족주의적 실천운동으로 위정척사운동과 화서학파의 항일의병운동이었다.
19세기 중엽 유교문화권인 한·중·일 동양3국은 비슷한 시대에 서양충격의 외압으로부터 전통문화의 보존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화서학파의 대외인식과 동일하게 고심했던 청나라의 왜인(倭仁)도 주자학적인 입장에서 중화의 전통문화는 서구문화와는 공존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일본에서는 도쿠가와(德川)막부 말기 미토학(水戶學)의 주창자들과 오하시 도쓰안(大橋訥菴)의 유교문화 입장에서 서구문화 수용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화서 이항로는 서양충격에 의한 서구 열강문화를 미개한 이질문화라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서양문화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인류문화와 도의의 중심인 중국의 문화적인 영향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전통적 가치와 서구문화는 사람과 동물이 다르듯이 서로 나란히 설 수 없고 통할 수도 없다는 논리였다.
이항로의 사상논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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