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문학이 근대산업과 소비 행태에 의한 자연파괴를 역사적 모순으로 인식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연과 인간, 자연과 문명을 상호 적대관계에 서게 하는 이 모순이 궁극적으로 인간파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마르쿠제 등이 강조했던 것처럼 자연이 노예화될 경우, 그 자연의 불가피한 일부인 인간 자신도 노예화의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인간에게 착취대상으로만 파악되는 한 자연은 그 인간에 대한 모든 호의를 회수한다. 근대적 생산/소비방식은 인간의 삶과 가치체계로부터 자연을 제외하고 그 품위를 조롱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삶의 양식들과 가장 현저하게 구분된다. 인간에게서 배제 당한 자연은 역으로 인간을 배제한다. 시인은 눈 내리는 숲으로 가지 못하고, 아이들은 비를 겁내고, 농사꾼은 땅을 믿지 못한다. 하이데거가 잘 표현했듯 수력발전용 댐이 들어선 라인강은 그 강에 내려와 물 마시던 “사슴의 라인강”이 아니다. 사슴이 마시지 못하는 물은 인간도 마실 수 없다. 강은 사슴을 배제하고 인간을 배제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상호배제적 갈등관계에 주목하는 일이 반드시 문명 그 자체에 대한 문학의 전면 부정이나 거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점은 문학이 자연파괴를 이 시대의 역사적 모순으로 인식하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근대산업으로 대표되는 문명에 자연파괴의 전적인 책임을 둘러씌우고 나면 이로부터 흔히 애꿎은 노자의 이름을 빌어, 혹은 무슨 “동양사상”의 이름으로, 아주 간단하고 손쉬운 결론 하나가 제시되는데, 그것은 문명을 포기하는 길만이 문제…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상호배제적 갈등관계에 주목하는 일이 반드시 문명 그 자체에 대한 문학의 전면 부정이나 거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점은 문학이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