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하회마을은 지금부터 약 600여년전 조선조 초 공조전서로 계시던 류종혜(柳從惠)공이 이 마을에 터를 닦은 이후 그 분의 후손인 풍산 류시(豊山柳氏)가 마을가구수의 약75%를 차지하고 있는 풍산류씨 전형적인 마을이다. 예로부터 하회마을은 許氏터전에 安氏 문전에 柳氏 배판이라는 말이 전해오는 전설의 마을이기도 하다.
하회마을이라고 하는 말은 별다른 의미나 내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문글자 그대로 물하(河)자, 돌회(回)자 물이 마을을 감아 돌아 흐른다 해서 하회로 불리게 되었다. 물이 돌아가는 형태가 태극형 또는 S자 거꾸러 놓은 듯한 형태로 흐르고 있어 수 태극이라 불려 지고 있다.
하회마을이 외부에 명성이 알리게 된 것은 조선 선조 때 영의정으로 임진왜란을 슬기롭게 물리치신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선생과 그분의 형님이신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선생 두 분을 배출하고 대(代)를 이으면서 수많은 인재(人材)가 배출되어 영남일원에 반촌마을로 크게 명성을 떨치므로 서외부에 알려지게 되었고 최근에 와서는 1984년 민속마을로 지정된 이후 각종 매스컴을 통하여 알려지게 되어 안동인근에서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로 변하였다.
민속마을 지정당시에 하회 마을에는 총 115가구 29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자연 부락이 민속마을로 지정되었으며, 국보 2점을 위시한 18점의 문화재를 확보하고 있어 전국에서 단위 마을당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마을이기도 하다.
하회 마을이 민속마을로 지정된 까닭은 물론 걸출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고 또 그분들이 남기신 각종 유물, 유적들이 많이 보관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사실상 지리적 여건과 자연 환경도 한 몫 하였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