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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그너(Wagner,1813~1883,도이칠란트)
Wagner 가극의 개혁을 위해 노력한 투지에 넘치는 일생.
제1기(前半生): 36세까지(궁정 악장 시대의 끝).
고향에서의 학습 시대. 딴 사람 작품의 지휘자로서 활동한 편력 시대.
다음에 파리 체재를 거쳐 드레스덴의 지휘자가 된 시대.
「방황 하는 네델란드인」,「탄호이저」,「로엔그린」
제2기: 1849년(36세)의 혁명을 중심으로 한 시대.
전환기라고도 할 시대로 작곡은 하지 않고 주로 예술 이론을 집필.
제3기(後半生): 19C 중엽쯤에 베네치아에서 죽기까지 사이.
망명과 편력으로 이어졌으며 53세(1866년)부터는 바이로이트의 악장으로 숭앙되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마이스터 징거」「니벨룽겐의 반지」「파르지팔」
경찰서기의 막내아들로서 라이프찌히에서 출생.
생후 6개월에 부친 사망.
그의 어머니는 아홉 아이들을 거느리고 죽은 남편의 친구였던 배우 `루트비히 가이어와 재혼.
드레스덴으로 이사하여 살았다.
8세(1821년)에 계부 `가이어`도 죽음.
9세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운지 연습을 싫어하여 평생토록 악기 연주 기술을 익히지 못함.
11세쯤부터 그리스 문학 및 셰익스피어에 열중.
14세 때 라이프찌히에 이주하고 이듬해 처음으로 베토벤의 작품을 듣고 감동한 나머지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
18세 때 라이프찌히 대학에 들어가 음악과 철학을 청강했는데 방자한 학생 생활에 빠져 들어 중퇴.
토마스 교회합창 지휘자.
`바인리히`와 알게 되고부터 비로소 진지하게 음악 이론을 배움.
20대의 바그너는 인간으로서나 음악가로서나 또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안정하지 못하고 편력을 계속 함.
21세 때 여배우 `민나 플라너`(4세 연상의 여인)와 사랑에 빠짐. 11월에 결혼.
26살, 실직한 바그너는 빚을 진 채 국경을 넘어 배를 타고 파리로 도망.(폭풍우를 만나 구사 일생으로 파리 도착) 후에 `방황하는 네델란드인` 작곡에 도움.
26세의 바그너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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