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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 독일 사람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오늘에도 매우 현실적으로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사회의 급격한 발전과 생활양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인간이 성숙한 사회인으로 서기 위한 전 단계로서 소년기에 받는 꿈과 방황 그리고 좌절감이 주는 상처는 크게 변하지 않는 까닭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 한스의 죽음으로 끝맺고 있다. 그는 왜 죽었는가? 한스의 죽음은 잘라 얘기한다면 학교생활의 부적응이 곧바로 사회생활의 부적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의 냉혹감이 가져온 비극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것이 학교이기에, 사회 생활의 부적응은 학교생활의 부적응의 결과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문제의 초점은 학교생활의 부적응으로 모아진다.
이제 한스와 학교의 관계를 분석해 보자. 이 양자의 관계는 어디에서 틀어지기 시작했을까?
한스, 선생님들이라면 누구나 한스같은 학생을 선호할 것이다. 무더운 여름방학, 그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후 조금이라도 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며 라틴어, 대수학, 희랍어를 열심히 익힌다.
과연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학생이 얼마나 있겠는가? 또 그런 학생을 교사는 얼마나 원하는가? 그는 그런 학생이었다.
한스의 이런 생활은 신학교에서의 처음 얼마간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교과서라는 양분만으로 그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다. 그 누구에게도 영양제만으로 살 수 없듯이, 인간은 교과서 밖에, 교실 밖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그 시기가 학교생활을 마치고 나서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진행된다면 그것은 선생님들에게는 행운일 것이다. 반면 학생 자신에게는 얼마나 큰 불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