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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 한국. 하지만 나는 내 것, 한국의 것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심미안을 기를 수 없었다. 오히려 서구의 것이 눈에 띄였고 보였다. 밀려드는 서구화의 물결에 우리 것이 파묻혀 접할 기회가 드물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접하는 빈도수가 많을수록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 싶다. 그토록 자주보던 신윤복의 미인도였지만 나는 그 속에서 미인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명확하게 답을 제시한다. `물러서면 보인다` 우리 것은 어느 하나 잔손질, 잔꾀가 없어서 떼어 놓고 바라보면 눈앞이 환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멀리 시선 둘 틈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오늘날의 한국인들. 길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앞만을 바라보고 간다. 잠시 쉬어갈 여유도 없이 신속하게 진행되는 나날의 생활. 멀리 놓아두고 완상할 만한 여유와 마음의 풍요로움이 사라진 까닭에 덩달아 한국의 미조차 사라져가고 있던 것이다.
아름다움은 지식으로서 통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감정으로서 감응한다. 도자기, 서화, 굴뚝, 창살. 그 단아한 멋과 수려함. 도자기에 담긴 질박하고 우아한 곡선의 미. 만드는 손길이야 오죽했으랴. 그 멋을 빚어내는 손끝에는 분명 느긋하고 풍류를 즐길 줄 알았던 조상들의 우리 것에 대한 애정과 순박하고 어진 마음이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정신에 감응할 수 없었기에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부끄러웠다. 같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신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그래도 작가의 시선을 따라 조금은 엿볼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비록 스스로 발견할 수는 없지만 혜곡 선생님이 일러주는 곳을 따라 되짚어보면 담묵에 스며드는 차분함과 격조와 함께, 화폭 가득이 배어나오는 풍류와 운치를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눈을 빌려 같은 곳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아마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이 발견해 놓은 아름다움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나…
아마 이런 식으로 다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