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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고구려 국가의 통치체제는 나부의 자치성에 기초한 나부체제였기 때문에, 지방통치 역시 재지수장층인 제가들을 통한 간접적인 지배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계부루왕권은 나부 관원의 명단을 보고받는 등 어느 정도 통제력을 발휘하였지만, 나부 내부의 일은 제가들에 의해 자치적으로 처리되었다.
그런데 나부는 그 내부에 다수의 단위집단을 포괄하고 있었다. ‘읍락’이 그것이다. 이 읍락은 곡집단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압록강, 동가강 유역의 지리적 조건 속에서, 고구려의 보편적인 취락군을 의미했다.
이 곡집단은 고구려연맹체를 형성하기 이전부터 지역별로 성장해온 단위정치체로서, 나부체제 아래에서도 자치권을 갖는 기본적인 단위집단으로 존재하였다.
3세기 중엽까지도 인민, 토지 등을 포함하는 곡집단이 지배나 수취의 기본적인 단위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곡집단은 그 내부에 다수의 소집단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곡 내부의 소집단은 독자적인 자치권을 갖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이 곡집단의 존재 형태나 세력기반은 다양하였다. 그 중에는 다른 곡집단을 통솔하면서 나부의 중심세력을 형성한 세력도 있었다. 나부 내의 부내부(部內部)를 구성하는 나집단의 존재가 그것이다.
이러한 나부 내 단위집단의 존재에서 보듯이, 나부통치체제 아래에서 지방통치는 나집단이나 곡집단을 세력기반으로 갖는 재지수장층인 제가세력의 자치권에 의해 이루어졌다. 특히 대가들은 휘하의 관료인 사자, 조의, 선인을 매개로 조세수취 등의 자치권을 행사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아직 이들 단위집단을 일원적으로 파악하는 통치체제는 성립되지 않았다.
한편 고구려는 초기부터 대외정복활동을 전개하여 정복지를 확대해 갔다. 압록강, 혼강 유역의 경제적 기반은 고구려의 지속적인 성장을 뒷받침할 만한 것이 못되었고, 따라서 고구려는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북옥저, 동옥저, 양맥, 동예 등 주변세력을 복속시켜 안정된 수취기반을 확대해 가는데 주력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