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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법은 그럴듯한 전제(함께 토론하는 상대가 승인한 명제를 실질적으로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진 의견)에서 출발한 추론을 목표로 한다. 플라톤의 변증법에 등장하는 토론 방식을 체계화하고 발전시킨 것일 뿐이다.
변증법에 대립되는 것이 논증의 학문인 분석론이다. 그럴듯한 전제에 바탕을 두는 변증법적 추론과는 반대로 논증적 추론은 타당한 전제에 바탕을 두며, 따라서 옳게 추론이 이끌어질 경우 타당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변증법’이라는 말이 좀 다르게 경멸적인 뉘앙스를 갖게되었다.
여섯째 헤겔의 경우이다.
정신 안에서, 그리고 사물들 안에서 일어나는 모순들의 화해가 헤겔이 말하는 변증법을 구성한다.
헤겔 체계의 첫 번째 세 계기는 가장 유명하다. “존재는 있다.” 이것은 긍정 또는 정이다. 그러나 이것 혹은 저것이 아닌 완전히 비결정적인 존재는 무와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긍정 혹은 정은 부정 혹은 반, 즉 “존재는 있지 않다.”라는 명제를 끌어들인다.
그러한 부정은 부정 돨 것이고,“존재는 생성이다.”라는 명제 속에서 그 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예에 따르면 합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알 수 있다. 합은 모순을 극복 하지만, 상반되는 두 명제를 보존한다. 그것이 ‘지양하다.aufheben’이라는 동사가 표현하는 바이다.
합은 정신 속에 사유의 정지를 또는 사물 속에 운동의 정지를 표시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합은 차례로 새로운 종합이 극복해야할 그 자신의 부정을 얘기하고, 그러한 부정의 야기는 끊임없이 전개된다. 정, 반, 합의 부단한 전개가 단지 정신 속에서만 진행된다면, 그것을 이해하기는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유하지 않는 사물 속에서…
합은 정신 속에 사유의 정지를 또는 사물 속에 운동의 정지를 표시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합은 차례로 새로운 종합이 극복해야…
일곱째 마르크스의 경우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