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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복식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로는 각종 문헌과 고분벽화에 그려져 있는 고구려인들이 착용하고 있는 복식형태에서 살펴볼수 있다. 고구려의 복식에 관한 기록은 『남사(南史)』,『북사(北史』,『통전(通傳)』,『주서(周書)』,『수서(隋書)』,『양서(梁書)』등에 보이고 있으며,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복식형태는 초기 수도였던 통구지방인 현재 중국 길림성 즙안현 일대와 후에 수도가 된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안도. 황해도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고기록 중 고구려 복식을 좀더 상세히 묘사한 것으로 《신당서(新唐書)》 동이전(東夷傳)을 들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복은 오채복(五采服)이며 왕관은 금테를 두른 백라관(白羅冠)이었고 여기에 금구(金 釦)를 장식한 혁대를 띠었으며, 대신(大臣)급은 청라(靑羅) 조우관, 일반 관인은 강라 (絳羅) 조우관에 모두 금.은을 장식하였고, 의복은 통수삼.대구고(大口袴)에 백위대(白 韋帶)를 띠었으며, 황혁리(黃革履)를 신었다. 그리고 서인(庶人)은 갈의(褐衣)를 입고 변(弁)을 썼으며, 여자는 머리에 권귁(巾귁)을 하였다...
고구려 남녀의 기본의복은 지금의 저고리에 해당하는 유(孺) 또는 삼(衫)을 위에 입고, 지금의 바지에 해당하는 고(袴)를 아래에 입었다. 귀족남녀들은 의식이 있을 때는 물론, 평상시에도 예의를 지키기 위하여 지금의 두루마기에 해당하는 포(袍)를 덧입었으며 귀족 여인들은 높은 신분을 표시하기 위하여 주름을 많이 잡은 치마인 상(裳) 또는 군(裙)을 고 위에 덧입었다. 머리에는 경쾌한 느낌을 주는 변(弁)을 주로 썼으며, 발에는 말타기에 편리한 화(靴)를 주로 신었는데 이는 지금의 승마용 부츠와 같은 신발이다. 집에 있을 때는 낮은 신, 이(履)를 신었다.
참고문헌
韓國服飾史 우송옥, 1998 수학사
한국복식문화사 유희정.김문자, 1981 교문사
한국의 복식문화(Ⅰ) 임명미,1996 경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