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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시대
조선시대 인사행정의 이념은 유교를 근본으로 관인이 덕치를 베풀 것을 강조하였고 행정은 모든 것이 치자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중앙집권화하였다. 따라서 삼강오륜에 입각한 1차집단 우선의 공동체 사회로써 씨족, 계급, 지역별로 차이가 심하고 혈연중심의 가족주의가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응시자격은 제한되어 있었으나 과거시험이라는 경쟁적 관리채용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특이한 사실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오늘날 고시제도의 모태가 되는 과거제도가 실시되었다. 과거는 3년에 1회씩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식년시(문과, 무과, 잡과, 승과)와 부정기시(국가경사와 특전부여시)가 있었다. 시험과목은 소과(초시와 복시)와 대과(초시, 복시, 전시)에 따라 차이를 두고, 시험자격은 문·무과 모두 원칙적으로 양반계급에 한정하였으며, 문과 중 소과 합격자는 하급관리에의 임용자격이 주어지고 생원과 진사로 호칭하였다. 대과의 갑과는 종6품(1등), 정7품(2,3등)에 임용하였다.
특별채용으로는 10년에 1회 실시하는 승진시험 형태인 중시, 하급관리 및 특수분야의 관리를 선발하는 취재, 고위관리가 관원후보자를 3년마다 3인씩 추천하는 천거, 공신과 왕실의 친척 및 현전직 3품이상 자손에게 응시 기회를 부여하는 문음, 전문기술직에 채용하는 잡로제도가 있었다. 이러한 과거제도를 관장하는 중앙인사기관은 예조(문과)와 병조(무과) 및 각 기술아문(잡과)이 담당하였다.
과거제도는 갑오경장과 함께 폐지되고 국왕이 최종 임명하는 칙임관, 중앙인사기관인 전고국에서 실시하는 공개경쟁채용시험에 의한 주임관과 판임관, 재능에 따라 특별채용하는 기술관을 위한 임용제도가 있었다. 응시자격에는 제한이 없고 1차시험인 보통시험에 합격한 자에 한하여 2차 시험임 특별시험을 실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