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三韓(삼한)이 성립되던 시기와 그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의가 거듭되고 있다. 본래 `韓(한)`은 辰韓(진한)만을 가리키는 호칭이었으나, B.C. 1세기 경 북쪽으로부터 남하한 유이민들이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진한 사회를 성립시키게 되자 대체로 安城川(안성천) 이남의 충남·전라 지방에 이미 성립되어 있던 先住民(선주민) 사회가 각기 馬韓(마한)과 弁韓(변한)을 칭하게 됨으로 하여 성립되었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三韓(삼한)의 성립에 대해서는 定設(정설)이 없는 실정이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三韓(삼한)의 위치 문제 또한 확고한 定設(정설)이 없다.
대체로 馬韓(마한)을 경기·충청·전라 지방, 辰韓(진한)을 낙동강 동쪽의 경상도 지방, 弁韓(변한)을 낙동강 서남쪽의 경상도 지방으로 보는 것이 대표적인 견해이지만,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예성강 이남의 경기 일원과 춘천 서쪽의 강원 일부를 辰韓(진한), 안성천 이남의 충청·전라 지방을 馬韓(마한), 영남 지방을 弁韓(변한)으로 보는 설도 있다.
참고문헌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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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산세계대백과 >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