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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는데 아버지께서 외우는 그을 따라 읽어 잊지 않았다.
성격이 활달하였으며. 글공부를 즐겨 아버지가 벼슬길에 오르자, 5살 때 서울 장의동으로 이사하여, 약 20년간 살면서 학문에 힘썼다. 그리하여 이웃하에 살게 된 대곡 성운과 같이 학문을 닦으며, 천문, 지리, 수학 등에 이르기까지 널리 통하였고. 옛 글에도 아주 능하였다.
2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김해로 옮겨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산해정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쳤다.
나라에서는 38살 때 ꡐ헌릉참봉ꡑ이라는 벼슬을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48세 때는 전생서의 주부에 임명되었으나, 또한 가지 않았으며, 55세 때는 중부사 주부가 되었으나 받지 않았다. 또한 55세 단성현감에 임명되었지만, 역시 학문에만 힘을 기울이면서, 정치하는 방향만 글로써 임금님께 올렸다.
그후 61세 때 산청 덕산으로 옮겨와서, 돌아가실 때까지 여기에서 살면서, 오로지 학문 연구와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힘썼다.
선생이 65세 되던 해 , 명종의 왕비 친정 사람으로서 나라를 주름잡던 윤원형이 쫓겨나고, 유교의 도를 닦는 학자들이 다시 조정에 들어서자, 국왕이 부르므로 올라갔으나, 덕산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당시 종친부와 전섬이라는 벼슬에 올랐으나, 나아가지 않고 1572년에 이르러 72세를 일기로 돌아 가셨다.
조선중기(16-17C 중반)는 남명의 교육 결과가 두드러지게 구현되는 시기였다. 이는 남명의 직전 및 재전문인(私淑人)들이 경상우도에 두루 거주하면서 상호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하나의 학파를 형성한 시기였고, 남명의 교육이론이 성립되고 후대에 계승되어 구현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1. 조선중기 남명의 교육이론 계승
南冥學硏究論叢 第十一輯
조선중기 남명의 교육이론 계승 : 인간 본성의 회복 강조
(사재명 : 현재 경상대, 순천대 강사이며, (사)남명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 남명의 교육에 있어서 자연주의적 경향 : 남명의 교육에 있어서 자연주의적 경향
(사재명현재 경상대, 순천대 강사이며, (사)남명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 남명 교육방법론의 현대 교육적 의미
南冥學硏究論叢 第十一輯
남명 교육방법론의 현대 교육적 의미
(정낙찬 : 영남대 교수)
4. 남명 경 (敬)과 의 (義) 교육사상
(채휘균 : 영남대 교수)
5. 남명 조식에 대하여 - 남명과 `여인천하`
(조사연)
6. 남명학연구원 (http://www.nammyung.org/ )
(여러 학자의 논문 및 정기 간행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