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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약진」정책과 자주노선>
대약진 정책은 중국의 인력, 물력, 자력을 총동원한 일종의 자력갱생운동으로,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중국 내부의 중대한 변혁을 초래하였고, 소련의 영향에서 벗어난 중국의 독자적인 사회주의 건설방법을 모색하여 중국의 완전한 자립· 자주노선을 추구하였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이는 중국의 방대한 인력을 동원하여, 중국의 공업화를 농촌에서 추진(중공업의 우선적 발전을 전제로 한 농업과 공업의 동시발전론)하여 사회주의 건설을 앞당기는 한편, 사상개조도 함께 실시하여 인간개조도 완성한다는 야심적인 계획이었다.
모택동은 ‘삼면홍기’의 구호아래 대약진운동, 사회주의 건설의 총노선, 그리고 인민공사 운동, 이 3가지 급진적인 조치를 동시에 밀고 나갔다. 58년 8전 제2차 회의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총노선을 채택하여, 농업을 기초로 하여 공업을 선도케 하였다. 인민공사는 중국이 국내건설의 약진을 단기간에 달성하기 위해 일으킨 인민적 대중동원방식에 의한 것으로, 농업은 물론 공업, 상업, 교육, 병사, 행정, 정당에 이르는 모든 활동을 총괄하는 완전무결한 전체주의적 농촌 조직체를 말한다. 중국공산당은 인민공사를 기초로 중국에 공산주의가 실현될 것을 강조하면서, 공산주의의 약진을 고취하였다. 이에 따라 공업과 농업의 생산고가 일시적으로 급상승하기는 하였으나, 인민공사는 이미 합작사에 불만을 품고 있던 농민들의 반발을 더욱 격화시켰고 농민들의 혹사, 가정의 해체, 공공식당의 문제점으로 생산의욕이 저하되었으며 엄청난 인력과 자원의 낭비 및 무리한 토목공사로 인한 자연의 파괴라는 한계점을 안고 있었다. 결국 객관적인 정세와 과학적인 원칙을 무시한 채, 주관주의와 비과학적 기초 위에서 출발한 농민동원방식의 결제개발전략인 대약진정책은 파탄으로 끝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