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과학기술이 세상의 빈곤과 무력감과 고통을 덜어 주어 사회 복지를 위해 공헌한 바는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아직도 고통이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심각한 불의와 불평등과 억압이 계속되고 있다. 복제기술로 우량종을 만들어 내는 데 우선순위를 정하기 보다는 사회환경을 개선하는 데 주력한다면 이 세계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더 가까워 질것이다.
빈곤과 질병과 고통의 근본원인은 책임사회가 지향하는 인격존중과 자유· 정의· 평등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본원인과 해결책은 기독교의 세계관에 명료하게 나타나며, 기독교는 과학주의의 낙관론과 유토피아즘의 허구성을 고발한다. 기독교의 근본신조는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이다. ‘고통을 없애므로’가 아니라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삼을 때’ 거기에는 참다운 구원이 있다.
Ⅲ. 결 론
기독교가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과학기술자들은 권력층과 부유층과 유착이 되어 생명복제를 상업화하고 국제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들이 운전대를 쥐고 있으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우리 기독교인들도 그리로 갈 수밖에는 없지 않은가?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생명복제 문화쪽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머지 않아 인간복제는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생명복제를 넘어선 인간복제는 ‘강요된 선택’일지 모른다.
참고문헌
1.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편, 「맞춤인간이 오고있다」, 황현숙 외 옮김, 서울:궁리출판, 2000
2. 김영한 외 8인 지음, 「21세기의 생명문화와 기독교」, 서율:쿰란출판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