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으로서의 행복을 ‘완전한 덕에 따르는 마음의 활동`이라고 규정하고, 덕을 도덕적인 덕과 지적인 덕으로 구분했다. 도덕적인 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기며, 지적인 덕은 교육에 의해 생겨나고 성장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주로 도덕적인 덕에 의해 논하는데, 그에 따르면 도덕적인 덕은 중용(中庸, 모자람도 지나침도 없는 적절한 상태)을 핵심으로 한다. 하지만 모든 행위와 정념(감정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생각과 근심)에 중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악의·파렴치·간음·질투·절도·살인 같은 경우에서는 중용이란 도무지 찾아 볼 수 없으며, 그 자체가 나쁘고 언제나 그릇된 것이다. 그런데 절제는 낭비와 인색, 용기는 무모와 비겁의 중간으로,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다. 즉 절제와 용기는 그 자체가 중용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용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가? 뜻하지 않은 우연이나 일시적 충동으로 중용에 맞게 행동할 수도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성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이라고 이야기한다. 일시적으로 우연히 중용에 맞게 행동했다 해도, 그것이 결코 영원할 수는 없다. 시종일관 중용에 맞는 행동, 즉 덕 있는 행동을 거듭함으로써 우리는 덕의 습관, 중용의 습관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구체적인 삶 속에서 중용의 태도가 습관화된 상태, 바로 이것이 인간으로서 최선이라고 간주되는 `행복`의 경지이다. 결국 인격이란 오랜 세월에 걸친 일관된 도덕적 훈련과 습관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용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가? 뜻하지 않은 우연이나 일시적 충동으로 중용에 맞게 행동할 수도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성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이라고 이야기한다. 일시적으로 우연히 중용에 …
3. 지적인 덕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