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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초에는 관습도감에 맹인 18명을 입속시키고 음악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나라에서는 관현맹인(管絃盲人) 제도를 설치했는데, 이 관현맹인은 궁중 내연(內宴)에서 관현합주(管絃合奏)나 가무반주(歌舞伴奏)를 맡았던 특수한 맹인 음악인들이다(장사훈, 1974). 이러한 맹인 음악인들을 두었던 이유로는 첫째, 내외법이 엄격했던 그 당시, 여자들만이 있는 궁중 내연에 보는 악공들이 들어갈 수 없었으므로 앞을 못 보는 맹인들에게 궁중에서 연주하게 했다. 둘째, 관습도감의 창기가 사죽(絲竹)과 장고를 배우지 못하였을 때, 궁중의 잔치와 제향 때, 관현맹인에게 임시로 반주를 하게 했다. 이러한 관현맹인 제도는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다.
훌륭한 맹인 음악인으로는 이반, 이마지, 김복산 등이 있었는데, 특히 이마지의 음악은 참으로 절예(絶藝)여서 그가 죽은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유법에 따라 거문고를 연주했다.
2. 홀 여사와 맹교육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근대 맹교육을 시작한 사람은 미국 감리교 선교사였던 홀(Rosetta Sherwood Hall)여사였다. 홀 여사는 1865년 9월 19일 뉴욕 설리번 카운티의 리버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