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병과 질이 공히 ‘앓는 상태’, 즉 병의 뜻을 가지고 있다면, 두 글자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부수 외의 글자를 살펴보면 될 것이다. 병은 형성자로 음부분인 병(병)은 ‘퍼지다, 넓어지다, 분명해지다’의 뜻을 가지고 있어, ‘병이 무거워지다, 분명해지다’라는 의미를 구성한다. 즉, 병이라는 글자는 두통, 발열, 설사 등의 각각 병적인 증상들이 합해지고 지속되어 어떤 하나의 ‘병’이라고 이를 수 있는 심각하게 앓는 상황에 도달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고 보여진다. 또한 이 글자는 ‘아픈 상태’의 총칭, 즉 건강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몸과 마음 상태의 총칭이 된다. 우리는 ‘생리’의 반댓말로 ‘병리’라는 말은 쓰지만, ‘질리’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는 것을 봐도, 병이 질보다 광의의 더 널리 통용되는 글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질자도 역시 형성자로, 부수 안의 시는 갑골문에서 대 +시(음)로, 대는 사람의 상형, 시는 화살의 상형으로, 합쳐지면 ‘사람이 화살을 맞아 다치다’ 의 뜻을 나타내며, 역시 일반적인 ‘병’의 뜻을 나타낸다. 그러나, 글자의 형성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질자에는 ‘앓음’ 중에서도 ‘화살에 맞는 것처럼 급속히 병이 든다’ 는 의미가 강조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질은 ‘빠를 질’로도 많이 쓰이는 것을 보게 되는데, 예를 들면 ‘질주’는 재빨리 달린다는 뜻이고, ‘질역’은 급속히 빠른 속도로 번지는 유행병을 뜻한다.
즉, ‘질’은 ‘병’ 중에서도 ‘빠름’의 의미가 포함된 협의의 ‘병’ 인 것이다. ‘질’자를 쓸 수 있는 상황에서 그 글자를 ‘병’자로 바꾸어도 의미가 통하지만, ‘병’자를 쓰는 상황에서 함부로 ‘질’자로 바꾸면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우리는 아픈사람을 ‘병자’로 칭할 수는 있어도, ‘질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