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문제가 되는 것은 학문에 임하는(마치 신학자와도 같은) 맑스주의자들의 태도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룩한 학문적 성과 그 내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대안적인 제도에 의한 연구는 부족하며, 더욱이 현존 사회주의 국가의 정치제도에 대한 연구마저도 부족하다. 새로운 것을 기다리는 열정은 있으되 그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은 부재하다는 것이다. 보비오에 의해 맑스주의 정치학의 부재로 규정되는 이러한 현실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들 수 있다. 우선은 맑스주의자들이 당에 대해 쏟는 과도한 관심이다. 맑스주의 국가이론은 새로운 국가로의 이행전략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이를 위해 이행의 주체로서의 당에 대한 이론적인 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나 정당론에 비해 국가론이라는 부분, 즉 국가기구의 구조에 대한 관심은 미약하다. 두번째로는 국가사멸에 대한 신념이다. 이행기적인 시기 후에 국가가 소멸한다면 그 이후의 국가체제에 대한 관심은 가질 필요가 없다. 정치적인 모든 것은 사회적인 경제에 종속될 것이며 순수한 행정이 정치의 자리를 메꿀 것이다.
그는 이러한 맑스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노동자계급에 의해 권력을 공략하자는 주장은 충분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이 공략되는 방식이 그 이후에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과 분리될 수 있는가? 최후의 전쟁이 아무리 파괴적일지라도 결코 최후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즉 권력은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며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누가 통치할 것인가에 매달려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를 지나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참고문헌
마르크스주의 국가이론은 존재하는가, N.보비오 외, 의암출판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 김웅, 2001 새내기 진보정치학교 자료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