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머리말
*항일전쟁에 관한 연구
①일본의 경우
중공의 승리요인을 지적하는데 주력해왔으나 근자에 들어 공산당뿐만 아니라 국민당의 역할도 분석하는 연구가 나타났다
‘군국주의 부활’내지는 ‘경제제국주의’의 방향에서 피해의식을 씻으려는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②중국의 경우
대만의 평가: 중국공산당은 민족주의를 이용하여 전쟁을 공산화의 기회로 삼았다.
대륙의 평가: 국민당은 반공 반인민의 입장에서 항전에 소극적이었고, 중공은 독립자주의 원칙을 견지하고 인민대중에 의거하여 최후의 승리를 쟁취했다는 것이다.
1979년 이후 대륙에서는 ‘실사구시적’ 역사관이 제기되면서 기존의 항일전쟁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쟁의 기간 문제
일본에서는 9 · 18사변(만주사변:1931), 7 · 7사변(노구교사건:1937), 일본의 대 영미 선전 포고를 계기로 삼아 여러 견해가 있다. 반면 중국에서는 대체로 ‘8년 전쟁’ 이라 하여 7 · 7사변부터 1945년 8월까지로 보고 있다.
Ⅰ. 전쟁의 발발과 중국의 대응
1. ‘7 · 7사변’
-1937년 7월 7일 밤 북경부근 노구교에서 누군가의 발포를 빌미로 일본군 1개 중대가 중국군을 공격했다.(노구교사건) 이에 노구교를 수비하고 있던 송철원의 제 29군은 일본에 격렬히 저항함으로써 8년간의 중일 양국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중국공산당은 국공합작을 통한 항일 자위 전쟁을 발동하자고 전국에 통전했다. 장개석은 ‘여산담화’를 통해 항전을 표방했고 화북에서 일본이 총공세를 시작하자 전면전쟁을 선포했다.
2. 국공 합작의 성립
-7·7사변으로 국공간의 관계는 급진전하여 여산의 국방회의에 중공대표로 주은래가 참가하여 중공의 의지를 전하고 국방회의는 전면항전을 결의했다.
-국민정부 군사위원회는 홍군을 국민혁명군 제 8로군으로 개편하고 총지휘에 주덕 , 부총지휘에 팽덕회가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