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3. 신라가 민정 문서(신라 장적)을 만든 이유는?
민정 문서는 경덕왕 때(755) 서원경(청주) 부근 4개 촌락의 실태 조사를 한 문서로서 1933년 일본 도다이사 정창원에서 발견되었는데, 촌을 단위로 조세 징수와 노동력 징발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촌주가 3년 마다 작성하였다.
이 문서에는 첫째, 촌락의 호수·인구수·토지의 종류와 면적·가축이나 잣나무·호두나무·소·말 등의 수효가 기록되어 있다. 둘째, 호는 인정(人丁)의 다과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누었다. 셋째, 인정(人丁)은 남녀별·연령별로 6등급으로 나누었다. 넷째, 토지의 종류에는 촌주위답·연수유답·관모답·내시령답·마전(삼밭) 등이 나타나 있는데 연수유답은 성덕왕 때 지급한 정전으로 추정되고 마전은 촌락 백성들의 공동 경작지였다.
민정 문서는 지금의 호구 조사와 비슷한 것이었다. 외형적으로 백성들과 그들의 재산에 대한 통계 자료이지만 민정 문서 작성의 본래 목적은 백성들을 통제하는 데 있었다. 지배층에서는 백성들의 안정을 정책의 제 1순위로 삼았다. 그래야만 지배층의 특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민정 문서를 작성하여 백성과 그들 재산의 이동을 면밀히 살폈으며 그 문서의 내용을 기본으로 정책을 결정하였다. 어느 시대든지 지배층은 그들의 안위를 위해 피지배층을 효율적으로 다스리려 한다. 신라 민정 문서도 그런 역사의 유물로 볼 수 있다.
4. 촌의 행정체계
(1) 주(州)·군(郡)·현(縣)·소경(小京)의 영성(領城)과 촌
신라촌장적에 나타나는 촌은 지배한 지방행정단위로는 주·군·현·소경·향 등이 있었다. 진평왕 33년(611) 이후에 현이 설치되면서 촌이 비로소 현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신라 통일기에 들어서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면, 군아래에 현이라는 행정단위가 생기고 …
신라촌장적에 나타나는 촌은 지배한 지방행정단위로는 주·군·현·소경·향 등이 있었다. 진평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