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퍼트남은 버전들에 의해 세계가 조각나거나, 아니면 버전들만큼이나 많은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개념에 오염되지 않은 세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으며, 우리가 상이한 개념 체계에 의해 상이한 방식으로 세계를 ‘새긴다’(carve up)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다수의 세계를 생성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정신과 세계가 공동으로(jointly) 정신과 세계를 산출한다”는 주장에 머무르고 싶어한다.
퍼트남은 굿맨이 위태로울 정도로 데리다에 근접했다고 생각하지만 굿맨과 데리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것은 굿맨이 비록 전통적인 단일한 진리 개념을 거부하면서도 결코 우리가 진리 개념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굿맨은 수많은 버전들이 우리의 이해에 공헌하는 한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여전히 철학적 논의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굿맨은 스스로의 지적처럼 해체주의자가 아니라 건설주의자(constructionalist)이다.
4 철학의 새로운 길: 듀이와 비트겐슈타인
퍼트남은 오늘날 많은 철학자들과 함께 단일하고 객관적인 세계 기술이 가능하지 않다는 신념을 공유한다. 그러나 그가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신념이 종종 자가당착적 상대주의나 극단적인 회의주의로 나아간다는 사실이다. 퍼트남의 생각으로는 로티와 데리다가 그러한 극단을 향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난점을 피하는 중간적이고 건설적인 철학적 논의의 가능성을 추구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퍼트남에 의해 중요하게 부각되는 두 철학자는 바로 듀이와 비트겐슈타인이다. 우리는 이러한 퍼트남의 방향성을 포괄적으로 ‘실용주의적’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