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0세기 초 프랑스 북부에서 시작된 이 질서는 서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 1066년 노르만 정복과 함께 잉글랜드까지 확산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먼 곳에 있는 국왕보다는 무력을 지닌 각 지역의 영주에게 의존하게 만들었다. 영주들은 토지를 매개로 기사들과 주종관계를 맺음으로써 침략에 대비하였다. 이것이 유럽 사회의 봉건화의 시초였다. 봉건 영주들은 전쟁으로 인한 혼란을 줄이고 체제를 어느 정도 안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농민에 대한 완전 통제라는 사실을 깨닫고 노예의 중세적 형태인 농노제를 통해 체제를 안정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농사는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전투로 인해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게 되자 일자리를 찾아 시골을 떠돌아다니는 유랑 노동 인구의 흐름이 지속되었고 이들 가운데 여성의 수가 매우 많았다. 이 여성들에게는 매춘은 하나의 생존 수단이었다. 상업적 성이 시장에서 판매되고 지압시장과 순회의 장이 유럽전역에 등장했다. 일부 매춘부는 순례자만 전문적으로 접대했다. 성스러운 순교지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여행하는 남성들은 여정을 ‘즐길’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여성 순례자들은 지나는 도시에서 생계를 위해 매춘을 하기도 했다. 또 늘 그래왔듯이 중세 유럽의 촌락을 전전하는 군대 때문에 창녀에 대한 수요는 늘 대단했다. 창녀들은 성 노예는 물론이고 요리사, 청소부, 무엇보다 간호사로서 군대와 동행했다. 중세 초 십자군 원정에서 수천 명의 창녀가 그리스도교 군대와 함께 성지를 순례했다.
11세기 이후에는 농업 경제의 부활과 함께 도심에 상권이 등장하고 발전하기 시작했다. 중세 유럽의 도회지가 급속히 확대되면서 부유하고 강력한 도시민, 즉 소규모의 부르주아 집단이 도시 생활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도시 생활에도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도시…
11세기 이후에는 농업 경제의 부활과 함께 도심에 상권이 등장하고 발전하기 시작했다. 중세 유럽의 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