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그러나 이는 또다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우선 축적된 잉여자본은 새로운 출구를 요구했다. 또한 독점이 강화되면서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노동자들의 숫자가 급진적으로 증대되었는데, 이는 사회적 갈등과 함께 노동계급의 저항을 야기했다. 이에 사회 내부의 문제를 외부로의 팽창을 통해 해결하려는 제국주의정책이 촉진되었다. 특히 자본수출을 위해서는 강력한 정치적 개입과 심지어는 영토병합이 요구되었고, 선진국들은 군비를 강화하면서 국제적인 긴장을 야기했다. 사실 유럽인들이 타 지역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 지역으로 진출한 것은 16세기 이래 지속되어 온 현상이다. 그러나 19세기 말 유럽의 제국주의적인 진출은 대규모의 인구이동이라는 현상을 수반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의 성격까지도 변화시켰다. 원료공급지와 상품시장이라는 재래적 의미 이외에도 잉여자본의 투자대상지역이라는 새로운 성격이 부여된 것이다. 이는 식민지의 역할이 종전의 경우에 비해 보다 증대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② 제국주의 국가들의 세계분할
영국, 프랑스와 같은 선진자본주의국가에 뒤이어서 해외진출을 서두르던 독일, 이탈리아, 미국도 세계분할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결코 자본주의국가라 할 수 없는 일본과 러시아까지 가담하면서 식민지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영국은 케이프타운과 카이로 및 캘커타를 잇는 이른바 3C정책을 통해 아프리카 경영을 시도하였으며, 독일을 상품시장으로서 가치가 있는 서아시아와 중부 아프리카와의 연결을 꾀하여 베를린-비잔티움-바그다드를 잇는 3B정책을 추구하였다. 또한 프랑스는 아프리카 횡단정책을 추구였던 영국과 다소 긴장관계에 놓였다. 한편 아시아에서 영국은 인도 제국을 세운 후 다시 네팔을 점령하고 아프가니스탄을 보호국화하는 동시에 미얀마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반도의 요지를 점령하여 말레이 연방을 세웠다(1895). 영국에 의해 인도에서 밀려난 프랑스는 캄보디아, 베트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