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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xxx-2.xxxxxx920년대 임시정부의 군사정책
초창기 임정의 군사활동은 주로 시베리아와 만주일대의 독립군단체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당시 임시정부의 主된 활동이 파리강화회의 및 미국에 대한 외교활동과 연통부와 교통국을 통한 국민통할에 집중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독립전쟁의 주도권은 교포가 다수 거주하고 있던 만주, 시베리아의 독립운동단체가 장악하게 되었다. xxxxxx920년에 들어와서 임시정부는 만주, 시베리아의 독립군단체를 보존하는 형태의 사관학교 설립, 비행대 편성문제, 군사법규의 정비 등으로 군사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무관학교 관계이외는 거의 실현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임시정부 군무부를 정점으로 서간도군구, 북간도군구, 시베리아 강동군구의 3개 군사지역으로 구분하였으나, 임정 자체가 그 지역 교포를 충분히 통할하지 못한 물적 기반의 취약성, 그리고 이에 맞지 않는 대규모의 계획수립과 재정의 곤란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군무부를 만주로 이동시켜서 독립군을 재편성하여 독립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계획도 세웠다. 이러한 시도는 xxxxxx920년 2월 23일부터 열린 제7회 임시의정원에서 윤기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