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Ⅳ. 한일간의 역사적 관계론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의 실체와 전개
1. 근대화와 함께 나타난 「일선동조론」
헤이난시대(平安時代, 794~1192)에 들어서면서 한일관계는 멀어지기 시작하여,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에는 국학(國學)이 형성되어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신성시하고, 황통(皇統)을 절대화하기 위한 바이블로 사용하는 일본중심사관을 형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에도시대에 형성된 천손강임설(天孫降任說)이다. 이러한 뿌리를 무시한 일본중심사관을 깬 것은 명치 초기(1868~) 근대화와 동시에 들어온 서양인들이다. 일본인의 기원에 관심을 같기 시작한 서양인들은 먼저 아이누족에 주목하여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 아이누족은 원주민이고 현재 일본인의 선조는 외부에서 온 정복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독일인 의사 베르츠는 인체의 골격 등을 조사하는 형질인류학이나 고고학을 근거로 하여 야마또(大和)민족이 아이누민족을 정복하였다는 인종교체론을 주장하였으며, 동시에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신화도 일본민족의 역사서로 이용하였다. 예를 들면 천손강림신화를 민족이동이라고 기술하였으며, 신무천황(神武天皇)의 소위 신무동정(神武東征)도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구주에 상륙한 기록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주장에 맨 먼저 반응한 것은 서양의 문명사관을 받아들인 저널리스트나 민간사가들이었다. 그들은 서양인들의 일본민족기원론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였는데, 대표적인 학자가 …
독일인 의사 베르츠는 인체의 골격 등을 조사하는 형질인류학이나 고고학을 근거로 하여 야마또(大和)민족이 아이누민족을 정복하였다는 인종교체론을 주장하였으며, 동시에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신화도 일본민족의 역사서로 이용하였다. 예를 들면 천…
2. 천황제의 절대화와 변질된 일선동조론
3. 해방후 다시 부상한 고대지배층외래설 - 기마민족정복왕조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