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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김석형은 『고대조일관계』를 발표하여 4세기에서 6세기에 일본열도는 통일된 것이 아니라 분국적 상황이라고 전제하고, 임나일본부도 야마토 정권이 삼한, 삼국의 분국을 통제하기 위해 열도 내에 설치한 기관임을 주장함으로써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 반론을 제기하였다.
그는 이제까지의 견해와는 반대 입장에 서서 한반도에 있던 신라, 백제, 가야 등의 국가들은 일본열도 내부에 식민지적 종속세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논증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서기에 보이는 임나는 吉備地方의 가야군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로서 고고학적인 연구결과를 이용하고 있다, 즉 九州地方 고분의 양식과 부장품에서 삼국의 요소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을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김정학은 일본의 彌生文化는 한국남부, 특히 가야지역에서 전하여진 것으로 믿는다면서 문화뿐 아니라 사람도 함께 건너갔을 것이라고 하였다. 계속하여 그는 彌生文化를 이룩한 가야계인은 일본화 하였으며 임나문제를 일본 내의 삼한삼국의 분국에 관한 문제로 보려는 것은 분국이란 어의와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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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수, 「임나일본부 재론」, 『가야문화』, 가야문화연구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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