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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민주의에 대해 국내에 소개된 설명들은 독일 사민주의가 맑스의 선구적 이론을 라쌀적으로 계승했다거나, 일정한 이념적 갈등 속에서도 맑스적 이념과 라쌀적 실천이 관철되었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맑스주의적 원리주의와 라쌀주의적 현실주의가 이념적으로 갈등하나 실천적으로는 조화를 이루었다는 설명이며, 후자는 양자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모두 갈등하면서 끝내는 라쌀주의적 현실주의가 승리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1차대전을 전후한 수정주의 논쟁을 거쳐 2차대전 후 국민정당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라쌀의 사민주의 정치에 대한 영향은 지속적으로 작용해 왔다. 독일 사민주의의 변화는 맑스의 전통에서 혁명적 성격을 수정해 온 결과가 아니라, 라쌀의 전통에 맑스를 이론적으로 접목하려던 과정이 실패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수정주의라는 말의 의미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맑스주의를 비판적으로 수정한 것은 분명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혁명적 계급정당 노선을 창당하고 이끌었던 베벨과 리프크네흐트의 후예들 중 일부가 라쌀 진영으로 항복해 들어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영국에서 페이비어니즘의 영향을 받아 개량주의적으로 전환해간 장본인인 베른슈타인이 “라쌀을 재발견”했다고 스스로 자인했던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 라쌀의 정당활동과 국가관
라쌀과 맑스가 활동하던 1860년대의 독일은 봉건질서의 타파라는 시민혁명의 문제와 국가통일이라는 민족문제 및 노동자 권리 확보라는 노동문제가 병존하던 시기였다. 그에 따라 라쌀은 노동자정당 건설을 통해 보통직접선거제를 획득하며 노동자들의 생산조합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보통직접선거권 획득은 의회 진입을 목표로 한 것이었…
라쌀과 맑스가 활동하던 1860년대의 독일은 봉건질서의 타파라는 시민혁명의 문제와 국가통일이라는 민족문제 및 노동자 권리 확보라는 노동문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