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성읍국가와 주거
청동기를 사용하면서 형성된 성읍국가들은 송화강 유역의 부여(扶餘), 압록강 중류지역의 예맥(濊貊), 요하와 대동강 유역의 고조선(古朝鮮), 동해안 함흥평야의 임둔(臨屯), 황해도지방의 진번(眞番), 한강 이남의 진국(辰國)으로서 이중 고조선이 가장 선진국이었다.
그리고 기원전 4세기경 중국의 철기문화(鐵器文化)가 들어와 도구의 변화로 농업이 크게 발달하게 되었는데, 출토된 철로 만든 괭이, 보습, 낫 등 발달된 농기구들로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 성읍국가들이 형성됨으로써 당연히 도성(都城)이 축성되고, 궁(宮)과 관아(官衙), 백성들의 집들이 지어져 시가지(市街地)를 형성하게 되었고, 또 지방에도 관아를 중심으로 한 지방행정지역들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 도성들과 지방행정지나, 관아건축에 대한 유적들과 유구들이 발굴된 것이 없어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다.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에는 성이 있었고, 진국의 초기 수도 월지국 자리였던 직산의 성거산에는 둘레 1,690자, 높이 8자되는 토성이 있었고 이를 “위례성”이라 하였다. 또 진국의 말기 수도인 국읍이 있었던 웅천에는 목책까지 있었고, 마한땅 원산(圓山)과 금산(錦山)에는 성이 둘러져 있었다.
이들 성과 목책들의 모습은 잘 알 수는 없으나, 백제 초기 도성으로 판단되는 서울의 몽촌토성과 성에서 발굴된 목책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또 지방행정지의 성인, 평안남도 온천군 성현리의 어을동토성, 황해도 은률군 운성리 운성리토성, 함경남도 금야군 룡강리의 소라리토성들로 미루어 볼 때 수도의 도성도 토성이었다고 판단된다. 이들 토성들은 대개 둔덕진 곳에 있었고, 둘레가 약 400-50…
이들 성과 목책들의 모습은 잘 알 수는 없으나, 백제 초기 도성으로 판단되는 서울의 몽촌토성과 성에서 발굴된 목책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또 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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