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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 응급실, 신장실 등을 드나들기가 헤아릴 수가 없고 “투석기”라는 기계에 가냘픈 내 팔을 스스로 내어주어 하루 4-5시간을 투석으로 생명을 의지하면서 신장실 문을 나설 때면 오늘도 무사히 투석을 마쳤으니 이제 이틀은 벌였구나 하며 차차 적응하게 될 무렵 지금은 고인이 된 선배 환우분의 중매로 같은 신장병을 앓고 있는 남편을 만났다.
처음에는 같은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결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나 가족들과 주위사람들의 권유로 1년 만에 친지 및 간호사님, 같이 투병중인 여러 환우분들의 축복 속에 눈물의 결혼식을 올렸다.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해 주며 둘 중 한사람이 감기에라도 걸려서 힘들어하면 그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고통은 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도 쇠약했던 나는 투석에 적응하지 못하고 저혈압으로 자주 쓰러지곤 했다.
병색이 뚜렷한 우리 부부의 모습에 이웃들도 많은 도움을 주셨고 주일이면 함께 교회에서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전남대학병원 측으로부터 뇌사자의 신장이식을 권유받아 수술을 하고 그 후 나는 동생의 신장을 기증받아 이식수술을 하였다.
10년을 투석하고 이식수술을 하였지만 상태는 아주 좋았다. 이제 우리 부부는 이식을 했으나 우리 주위에 투석으로 고통받는 환우분을 위해 봉사하며 살 것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복지혜택을 받지 못한 광주,전남지역의 환우분을 위해 “사단법인 한국신장장애인협회 광주.전남지부”설립 하여 남편은 홍보부로 봉사하고 나는 전공을 살려 외로운 노인들을 위한 위안잔치 도는 교회행사, 장애인 행사 등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다. [출처= 신장이식모임 나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