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2. 제 2·3회 십자군
티그리스강변에 자리잡은 모슬의 총독 장기는 십자군의 주력부대가 돌아간 후 티그리스강 유역의 이슬람세력을 통합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이슬람세력은 다시 결속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십자군국가들의 입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장기는 북부 시리아를 차지한 후 1144년에 에데사를 외복했다. 유럽은 다시 십자군을 일으켜 프랑스왕 루이 7세와 독일의 콘라트 3세가 참가한 2회 십자군은 소아시아에서 큰 손실을 입어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루이와 콘라트는 각각 투르크군의 공격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만났지만, 자신들의 자리를 보전하려 한 그 곳의 기독교 영주들과도 대립했다. 충분치 못한 병력으로 다마스쿠스를 공격했다가 결국 실패로 막을 내렸다.
십자군 전쟁 시기를 통해 이슬람세력의 위대한 지도자인 이집트의 살라딘은 1187년 옐살렘을 함락시켰다. 티르만이 십자군의 영역으로 남게 되자 유럽 기독교세계는 당연히 큰 충격을 받고 세 번째 십자군을 일으켰다. 영국의 리처드 1세, 프랑스의 필리프 존엄왕, 독일황제 프리드리히 1세 등 유럽을 대표한 국가의 군주들이 참여했던 이 원정은 서로 다투느라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출발이 늦어졌고, 먼저 출진한 독일 황제는 1190년 소아시아의 한 강에서 익사했다. 이코니움에 도착해 이 곳을 함락시킨 독일군은 팔레스타인으로 진격, 그 곳에서 영·불 양국의 십자군과 합세하고, 항구도시 아크레를 포위공격해 1191년에 이 곳을 함락시킨다. 그리고 살라딘과 조약을 맺고 기독교도의 예루살렘 자유왕래를 보장받았다. 그러나 이 뿐이고, 유럽의 대국들이라 할 수 있는 영국·프랑스·독일의 군주들이 나선 3회 십자군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참고문헌
1. 차하순, 『서양사총론』, 서울; 탐구당, 1993.
2. 이원근, 『중세 유럽의 사회와 문화』, 대구; 중문출판사, 1995.
3. 진원숙, 『손에 잡히는 서양사 이야기』, 서울; 도서출판 신서원, 1999.
4. 진원숙, 『충돌의 역사』, 서울; 도서출판 신서원, 2002.
5. 정동근, 『시민사회론』, 서울; 법문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