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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방과 경제건설의 병진 정책
가. 국방·경제 병진정책의 추진동기
한국전쟁이후 50년대 북한의 거의 모든 정책은 “선건설, 후통일”의 논리에 따라 경제재건 우선에 돌려졌었다. 이 시기 정부 총예산의 70%이상이 경제건설에 돌려졌으며 모자라는 인력수급을 위해 1956년에는 8만명의 병력을 감축하기도 하는등 상대적으로 군사력 건설에는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시기 북한의 국방정책은 소련과 중공등 공산국가로부터 원조를 받아 경제 재건을 하는 시기로 군사정책 역시 기본적으로 중공과 소련에 방위를 맡기는 ‘의타정책 (依他政策)’ 혹은 타국의존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김일성은 일제시대 항일운동 및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자위적인 군사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김일성의 생각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1958년 10월 26일까지 북한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고 1960년대 소련과 중국의 수정주의, 교조주의 이념 분쟁등으로 인한 對 북한 경제원조 중단, 인민군에 남아있던 소련의 기술자와 고문들의 소환등으로 군사력 증강, 자주적 국방력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1…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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