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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년에 바흐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왕의 쳄발로 주자로 근무하던 2남 엠마누엘의 중개로 5월에 포츠담의 유명한 이 계몽군주의 궁정을 방문한다.
왕은 바흐를 환영하고, 바흐도 왕이 제출한 주제를 바탕으로 하여 즉흥연주를 들려주었다. 이를 동기로 태어난 곡이 BWV1079 <음악의 헌정 - Musical Offering(Musikalisches Opfer)>이다. 그리고 그 해 6월에 이론가 미\쯜러 - Lorenz Christoph Mizler(1711~1778)가 창립한 <음악학협회 - Societät der musikalischen Wissenschaften>에 가입했는데, 그때 오르간용의 카논풍 변주곡 BWV769 <높은 하늘에서 나는 왔도다 - Einige canonische Veränderungen uber das Weihnachtslied in C Major>를 작곡, 출판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1748년부터 1749년 초에 걸쳐 마지막 대작 BWV1080 <푸가의 기법>을 작곡하고 있었다고 추측된다. 이 상의 3곡은 고도의 대위법 기교를 구사한 난곡으로, 얼핏 생각하면 반시대적이라고도 판단되는 이 경향은 바흐의 만년을 특징짓고 있다.
바흐의 자필로 보아 보면 1746년경부터는 만년 특유의 노쇠함을 짐작할 수 있으며, 시력 또한 쇠퇴하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1749년5월의 뇌일혈 발작과 함께 그의 시력은 급속하게 감퇴되어 그 뒤로 직접 곡을 쓰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 <푸가의 기법>이 중단되고 미완성인 채로 남겨진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750년3월 말부터 4월에 걸쳐 두 차례의 눈 수술을 받았으나 성공하지 못하여 끝내 바흐는 시력을 잃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이 때 사용하던 약들도 오히려 몸을 쇠약하게 만든 것 같다. 제자 알트니콜 - Johan Christoph Altnikol(1720~1759)과 그의 아내인 바흐의 딸이 바흐의 위급함을 듣고 임지인 나움부르크에서 왔다.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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